와서별제공파
유저(有柢)[1618(광해군 10)∼1679(숙종 5)]
자는 거경(巨卿), 호는 위암(渭庵), 운수군의 6대손이며 강진부수의 현손이고 극부(克傅)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부친의 효행과 문학을 계승하였고 덕행과 예절의 가르치심을 몸소 실천하셨다.
병오년에 친상을 당하여 정성을 다해 장례를 모시고 장후(葬後)3년간을 여묘살이하니 세인들이 이산림처사(李山林處士)라 칭(稱) 하였다 하며 생존시와 다름없이 성심껏 공친분향(供親焚香)하시니 향불이 불소자생(不燒自生)하여 잠시도 꺼진 적이 없다 하며 공의 정성이 지극한 탓으로 감천감신(感天感神)한 실증이라 하였다.
벼슬은 와서별제(瓦署別提)를 지냈다. 배위는 별제 경주최씨 웅진(應軫)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 학령산 유좌이다.